2017년 12월 15일

종문 관련 주요 서적 소개

 

【 영주지 】

영주지(瀛洲誌)는 탐라(耽羅)의 역사를 기록한 문헌(文獻)으로서 현존하는 각종 문헌 중 가장 권위있는 정사본(正史本)이고 가장 오래된 최고본(最高本)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저자(著者)나 간행(刊行)연대는 미상이나 삼성신화(三姓神話)로부터 시작하여 고려(高麗)초까지의 탐라(耽羅)의 역사가 단행본으로 자세히 수록되어 있음을 고찰컨대 고려말엽에 간행된 문헌으로 짐작된다.
그 후 탐라사(耽羅史)에 관하여 조선(朝鮮) 초에 편찬된 고려사지리지(高麗史地理志),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등은 영주지(瀛洲志)를 인용하였다고 한다. 본 영주지는 동문선(東文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제계고(帝系考-髙氏篇), 전고대방(典攷大方)에도 수록되어 있으며 원본(原本)은 1918년도 창경원 장서각(藏書閣)에서 1981년도에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이관 소장되어 관리하고 있다.

【 탐라국 왕세기 】

저자와 발간연대는 미상이나 탐라국(耽羅國) 역사를 기록한 귀중한 사료(史料)로서 장서각(藏書閣)에 소장된 백씨통보(百氏通譜)에도 나타나 있다.
탐라국 왕세기는 삼신인(三神人)의 출현, 탐라의 건국 등 삼성신화 및 탐라왕국시대에 있었던 45대 역대제왕의 치적과 사적, 내정(內政), 해외교류 등 역사적인 사실을 각 분야에 걸쳐서 자세히 기록한 문헌으로 본문은 1805년(乙丑)에 간행된 고씨보에 소재된 것을 번역한 것이다.
(註) 1973년 발행한 고씨세록(髙氏世錄)을 참조(參照)하였음.

【 동문선 】

이조 성종(成宗)의 명을 받아 서거정(徐居正)이 신라로부터 이조 당대(當代)에 이르기까지의 우리나라의 우수한 시문(詩文)을 모아 엮은 책이다. 동문선에 수록된 성주고씨가전은 1416년(태종16년) 7월에 대제학(大提學) 정이오(鄭以吾)가 지은 것으로 원본은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동문선(東文選)은 총 154卷 45冊중에서 43卷 130面에 소재되어 있는 성주고씨가전(星主髙氏家傳)은 삼성신화로부터 고려시대를 거쳐 이조 초까지 탐라의 역사이며 역대 성주(星主)에 관한 문헌이다.
(註) 정이오(1354~1434) : 고려, 조선의 문신이며 1410년 태조실록의 찬수(撰修)에 참여 1413년 예문관대제학, 지공거(知貢擧), 찬성사(贊成事)에 이르렀다.

 

【 탐라지 】

본 탐라지(耽羅志)는 1653년(효종4년)8월에 제주목사 이원진과 전적 고홍진(髙弘進)이 편찬 간행한 제주 역사 지리서(地理書)이다. 이원진(李元鎭)의 자는 정경(鼎卿), 호는 태호(太湖), 본은 여흥(驪興)이고 판서 지완(志完)의 아들이며 좌찬성 상의(尙毅)손자로 1594년(선조27)에 출생하였다. 그는 1651년(효종2년)58세 때 제주목사로 도임하여 효종4년까지 있었다. 당시에 헨드릭 하멜 일행이 제주에 표착하였으므로 이들 표류인 30여명을 서울로 보냈다.
본 탐라지는 1653년(효종4년)가을에 당시 제주의 석학인 전적(典籍) 고홍진의 감교(監校)로 완성되어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내용으로는 지지(地誌)로써 제주(濟州), 정의(旌義), 대정(大靜)으로 나누어 건치연역, 진관, 성씨, 풍속형승과 공헌 인물 등에 이르기까지 요점을 간추려 수록하였다.
여기에 인용된 주 문헌은 동국여지승람과 충암의 풍토록(風土錄), 주기(州記) 등이고 기타 동문감(東文鑑) 등 많은 문헌을 인용하였다고 한다. 본 탐라지 원본은 규장각(奎章閣-창덕궁)에 소장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 고씨세록 】

조상숭배(祖上崇拜) 특히 조상의 아름다운 덕행(德行)을 추앙하고 동족 간에 친목을 도모하는 일은 예로부터 우리 겨레의 중요한 전통정신(傳統精神)의 하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髙氏는 우리나라 성씨 286개(2000년 기준)중 저성(著姓)에 속한다. 만성보(萬姓譜)와 씨족통보(氏族統譜)에 의하면 고씨의 본관(本貫)이 10여종(餘種)으로 되어 있으나 이른 바 고주몽(高朱蒙)의 후예라고 하는 연일(延日), 횡성(橫城)의 고씨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제주(濟州)를 본관으로 삼고 있다. 제주고씨세보에 따르면 탐라국주(耽羅國主)는 시조(始祖) 고을나(髙乙那)로부터 대대로 이를 세습(世襲)하여 오다가 신라성시(新羅盛時)에 고후(髙厚)가 그 아우 두 사람과 함께 신라에 입조(入朝)하여 성주(星主)의 작호(爵號)를 받았고, 그 후 또 고말로(髙末老)에 이르러 서기 938년(고려 태조21년) 고려에 입조(入朝)하니 이가 곧 제주고씨의 중시조(中始祖)가 되었다. 그동안 널리 사료(史料)를 수집하여 고씨세록(髙氏世錄)를 편찬하게 되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제1편 탐라사(耽羅史), 제2편 탐라국 시조 고씨종사, 제3편 선조의 행적, 제4편 선조의 유고 선집, 제5편 선조문헌, 제6편 기타 선조사우 등을 비롯하여 선조의 과환(科宦), 저술(著述), 학행(學行), 충효열(忠孝烈) 등의 행적을 수록하고 있다.

 

【 탐라성주유사 】

옛 사람의 말에 유생어무(有生於無)하고 무생어유(無生於有)라고 했는데, 태초에 인류가 출생했을 때에는 육신의 태생(胎生)이 있을 수 없고 신화(神化)또는 기화(氣化)의 이적(異蹟)이 있었으니 고대국가의 역사를 보건데 신화가 없는 나라는 거의 없다.
제주 삼성혈(三姓穴)에서 삼신인(三神人)이 출현한 사실에 있어서도 이를 현실적이 아니라고 하여 부정(否定)할 수 없는 것이다.
탐라의 역사는 髙․良․夫 三神人의 신화로 부터 시작되었으니 髙乙那王의 15세손 髙厚, 髙淸, 髙季 三昆季가 신라에 입조(入朝)하여 후는 성주, 청은 왕자, 계는 도내(徒內)의 작호(爵號)를 하사(下賜) 받았다.
그 후 성주의 작호는 고씨가 세습하였으며 왕자, 도내는 양씨, 문씨 등이 세습한 바 여조(麗朝)에서 간혹 주현(州縣)을 설치하고 수령(守令)을 둔 일도 있으나 성주, 왕자, 도내의 작호는 그대로 존속되었으니 이는 달리 볼 수 없는 특수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성주(星主)의 개략(槪略)을 논한다면 당초 고후(髙厚) 삼곤계(三昆季)가 신라에 입조(入朝)하기에 앞서 객성(客星)이 남방에 출현하거늘 태사(太史)가 아뢰기를 「이는 이국인(異國人)이 내조(來朝)할 징조(徵兆)입니다」라고 예언하였는데, 이 객성을 준(准)하여 성주라고 명칭함에 이른 것이라 한다. 그 후 고려 태조조(太祖朝)에 탐라국주 고자견(髙自堅)의 태자(太子) 고말로(髙末老)가 입조하여 성주 왕자작을 제수(除授)하였고, 정종조(靖宗朝)에는 고유(髙維)가 려조(麗朝)에 출사(出仕)하여 벼슬이 우복사(右僕射)에 이르렀으며 그 아들 고조기(髙兆基)는 고려 인종종(仁宗朝)에 벼슬하여 평장판이부사(平章判吏部事)에 이르렀다.

원종조(元宗朝)에 삼별초(三別抄)가 잔멸된 후 고적(髙適)으로서 유총관(留摠管)을 삼아 도민을 무마(撫摩)하게 하였고 충열왕조(忠烈王朝)에 원나라와 연합하여 일본을 정벌함에 있어 제주에서는 제10대성주 고인단(髙仁但)이 이에 적극 협력하였으며 우왕조(禑王朝)에 왜적이 침입하자 제16대 성주 고신걸(髙臣傑)이 방어에 진력하였다.

조선조 태종 2년에 성주 고봉례(髙鳳禮)와 왕자 문충세(文忠世)가 성주, 왕자의 작호가 참람(僭濫)하다하여 개정(改正)하기를 청하거늘 조정에서는 성주는 좌도지관(左都知管), 왕자는 우도지관(右都知管)을 삼았으니 이로서 성주(星主),왕자(王子) 등의 작호(爵號)는 종말을 告하게 되었다.

이상의 사적(事蹟)은 영주지(瀛洲誌), 탐라지(耽羅志), 성주고씨가전(星主髙氏家傳)에서 대략 간추린 것인데, 역대성주의 내륙에 대한 공헌이 많았으나 제주는 절해(絶海)의 고도(孤島)로써 내륙지방과 멀리 격절(隔絶)되어있는 때문에 한 지방사(地方史)로서 소외된 채 개략적(槪略的)으로 취급되어 왔던 것이다. 이제 제주는 구시대 소외에서 탈피되고 한국사속에서 전통문화의 한 지역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으며 그 하늘 높이 솟은 한라영봉과 남해의 맑은 파도, 일방무제(一望無際)의 귤원등 명미(明媚)한 풍광은 온 천하의 절찬을 받아 우리나라의 면목(面目)을 새롭게 함에 이르렀으니 감탄(感歎)을 마지 않는다.
(1979년 8월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崔永禧 탐라성주유사 발간 序文에서)

탐라성주유사의 책자 내용은 제1장 序說(제주도의 자연환경, 耽羅史 小考), 제2장 탐라개국의 연원, 제3장 탐라왕국시대, 제4장 탐라성주시대, 제5장 탐라시대의 인물, 제6장 탐라의 遺跡, 제7장 탐라사 史記, 제8장 탐라사에 관한 주요 고문헌, 제9장 부록 순으로 고씨종문회총본부 탐라성주유사 편집위원회에서 1979년 9월20일 발간되었다.

 

【 고씨대동보상세편 】

세상에서 이른바 족보(族譜)니 가승(家乘)이니 하는 것이 본시 그 기원(起源)으로 말하면 신라시대에서도 골품(骨品)을 따지는 일이 있었고, 中國에 있어서도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나 당대(唐代)에서부터 문벌(門閥)을 숭상(崇尙)해 왔으니 무엇인가 적어 전하는 것이 있었으련만 지금에 끼친 문헌은 보이지 아니한다. 그 뒤 책으로 족보를 시작한 것은 송나라때 소동파(蘇東坡)의 부친 소순(蘇洵)으로 부터요, 또 가승(家乘)이란 말은 같은 시대 황산곡(黃山谷)으로 부터 비롯한 것이며, 그것도 처음에는 위로 고조(高祖)까지와 아래로는 八寸까지만 편입(編入)하는 것으로써 예규(例規)를 삼다시피 했던 것이라고 일러온다. 그러던 것이 우리나라에 와서는 그 체제(體制)가 크게 발전하여 이른바 대보(大譜)를 만드는 데까지 이른 것이며 개인의 행장전기(行狀傳記)와 문중(門中)의 가승족보(家乘族譜)등이 국사(國史)의 미비한 점을 보완하여 우리나라 전통문화와 인물연구에 귀중한 참고가 되는 것임은 더 말할 것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수 많은 성씨중 저성(著姓)으로 이름난 濟州髙氏는 수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간 고씨문중에서 성주공파(星主公派), 전서공파(典書公派), 영곡공파(靈谷公派), 문충공파(文忠公派), 장흥백파(長興伯派), 화전군파(花田君派), 문정공파(文禎公派), 상당군파(上黨君派), 양경공파(良敬公派) 등 九派의 파보(派譜)를 각각 발간하였거나 혹은 간행 중에 있기도 하며, 마침내 각 파보를 집대성(集大成)하여 제주고씨대동보상세편(濟州髙氏大同譜上世篇)을 편집 발간함에 이르게 되었음은 실로 일대성사(一大盛事)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구태여 탐라의 사료(史料)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제주고씨 일문(一門)은 탐라의 개국시조인 고을나왕(髙乙那王)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명문거족(名門巨族)인 것은 이미 세상에 널리 알고 있는 바이다.
그 시초(始初)에 관하여 髙 ․ 良 ․ 夫 삼성신화(三姓神話)가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고문헌(古文獻)에 의하면 시조(始祖) 髙乙那王의 15세손 髙厚, 髙淸, 髙季등 삼형제가 신라에 입조(入朝)하여 각각 星主, 王子, 徒內 등의 작호(爵號)를 받았고 그 뒤 45세 탐라국 髙自堅王의 태자 고말로(髙末老)가 고려에 입조하여 역시 성주, 왕자의 작호를 받았으니 그로부터 다시 헤아려 髙末老를 제주고씨 중시조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제주고씨로서 내륙에 진출하여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성주공 말로의 아들 고유(髙維)로부터 였던 것이니, 그가 처음으로 만성시(南省試)에 수석(首席)으로 합격하여 벼슬이 문하시중우복사(門下侍中右僕射)에 이르렀고, 그의 아들 고조기(髙兆基)는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로서 시문(詩文)으로도 명세(鳴世)했으며, 또 그의 손자 고적(髙適)은 유총관(留摠管)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냈다. 그 뒤 중시조 10세손 인단(仁但)은 탐라지휘사(耽羅指揮使), 그의 증손 신걸(臣傑)은 호조전서(戶曹典書)를 역임하였고, 신걸의 제3자 봉례(鳳禮)는 벼슬이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이르렀으며, 15세손 득종(得宗)은 조선초 대표적 인물로서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지냈으며 시문에도 뛰어났다. 이밖에도 이부상서(吏部尙書) 문충공(文忠公) 경(慶), 양헌공(良獻公) 장흥백(長興伯) 중연(仲木筵), 상장군(上將軍) 화전군(花田君) 인비(仁庇), 판춘추관사(判春秋館事) 문정공(文禎公) 택(澤), 검교장소감(檢校將少監) 상당군(上黨君) 공익(恭益), 예부상서(禮部尙書) 양경공(良敬公) 영신(令臣), 등 고려조에서만 구상서(九尙書) 十二翰林의 명현(名賢)이 배출되었다. 한편 탐라성주(耽羅星主)는 중시조 髙末老로부터 十四世 鳳禮에 이르기 까지 후손들이 代代로 그 성주작위를 세습(世襲)하였으니 髙氏宗史는 耽羅史와 그 脈을 같이하며 主流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註) 1979년 10월 3일 문학박사 노산(鷺山) 李殷相 序文에서

제주고씨대동보상세편(濟州髙氏大同譜上世篇) 내용은 제1편 영주지(瀛洲誌), 제2편 탐라국왕세기(耽羅國王世紀), 제3편 상세편(上世篇), 제4편 고씨종사(髙氏宗事), 제5편 탐라국사(耽羅國史), 제6편 고문헌(古文獻), 제7편 고양부삼성사 사기(髙良夫三姓祠 史記), 제8편 고양부 삼성의 서차고(髙良夫三姓의 序次考), 제9편 탐라사 년표 등 부록이 수록되어 있다.

 

【 고씨대관 】

ㅇ발행일 : 2003. 7. 1

ㅇ발행처 : 고씨중앙종문회

ㅇ수록내용(上卷)

국민교육도 그 출발은 가정교육, 나아가 종문교육(宗門敎育)이 출발점이 되는 것으로써 우리 국민 개개인의 가정문화, 나아가 종문문화는 세계에서도 드러내놓고 자랑할 수 있는 문화유산이다. 고씨의 종문사는 과거 1973년 「고씨세록(髙氏世錄)」으로 정리한 바 있으나, 이를 기본으로 수정 보완하여 씨족(氏族)의 연원(淵源), 현조(顯祖)의 국란 극복 위업과 남기신 가르침, 특히 충효사상의 선양고무(宣揚鼓舞), 후손이 전승(傳承)해 가야 할 전통문화를 들추어 고씨대관을 편찬하다.

그 내용으로는 상세편에서 고씨의 연원, 선조의 사적(事績), 선조의 충의효열록, 선조사적에 관한 사료, 한국전쟁의 전몰용사 공훈록, 종사편에서 고씨종문회연혁 및 현황, 고씨중앙종문회 사업 및 운영, 종사에 관한 화보 등이 수록되었다.
※ 참고문헌 : 동문선(東文選), 고려사(高麗史), 이조실록(李朝實錄), 동국사략(東國史略), 동국통감(東國通鑑),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백씨통보(白氏通譜), 국조보감(國朝寶鑑),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

 

【 제주도지 】

ㅇ발행일 : 1982. 2. 10

ㅇ발행처 : 제 주 도

ㅇ편 집 : 문화공보담당관실(上下券)

ㅇ수록내용(上卷)

․ 제1장 상고사(上古史)

-제4절 탐라국 시대(개설, 선사시대의문화, 제주도거주민의 구성, 제주도의 개벽과 삼성설화, 삼성서열에 대한 문제, 탐라국의 성립과 신라조 입조, 탐라국의 대외관계)

․ 제2장 중세사(中世史)

-제1절 탐라중기(고려전기) : 고려에 귀속, 연혁, 화산활동, 성주․왕자 직위계승, 공헌(貢獻), 탐라인의 중앙관직, 성주의 몽고방문, 몽고의 일본정벌준비와 그 병참기지, 삼별초의 항몽투쟁,

-제2절 고려후기 : 원의 지배와 도민의 수모, 목호의 토벌과 고려의 패망, 난세 4반세기와 탐라국의 종언,

․ 제3장 근세사(近世史)

-조선전기 : 이씨조선의 건국과 제주, 제주인의 중앙관직 진출 등 수록